청년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335
한자 靑年運動
영어공식명칭 Youth Movement
이칭/별칭 청년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0년대 - 청년 운동 시작
발단 시기/일시 1919년 - 3.1 운동
발생|시작 장소 청년 운동 - 경상북도 성주군
종결 장소 청년 운동 - 경상북도 성주군
성격 사회 운동
관련 인물/단체 성주청년회|성주청년동맹|가야청년회|성주형평청년회|벽진소년단|성주소년동맹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지역에서 청년들이 벌인 사회 운동.

[개설]

청년 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청년을 포함한 주민의 봉건 의식 타파와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고, 사회 운동과 민족 운동의 기반이 된 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1919년 3.1 운동은 거족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3.1 독립 운동으로 대중은 민족 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자신감은 1920년대 이후 민족 운동의 대중적 기반 확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3.1 독립 운동은 거족적인 민족 운동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독립운동 세력은 그동안의 운동을 평가하면서 새로운 독립운동의 방략을 모색하였다.

독립운동 세력은 비조직·고립적·분산적으로 전개되어온 독립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총체적인 지도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동시에 독립운동의 기반 확대를 위한 대중의 민족의식 및 계급 의식 고양을 위한 조직의 필요성도 인식하였다. 또한 각계각층에서 권익 확보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하며, 전국 각 분야에서의 대중 조직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특히, 어느 집단보다도 현실 사회에 더 민감하고 더 진취적이며 개방적인 성향을 가진 청년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몰아친 세계 개조의 조류에 호응하여 새로운 문화의 건설과 자신의 권익을 대변할 청년 조직의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경과]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도 1920년대 전반기에 성주청년회를 시작으로 벽진청년회 등의 청년 단체가 결성되었다. 청년 단체는 회원의 친목 도모와 수양을 위해 노력했으며, 야학과 강연회 등을 통해 청년을 포함하는 지역민을 위한 지역 사회 전반의 봉건 의식 타파와 함께 근대 지식 보급에 힘썼다.

1920년대 후반에는 가야청년회가 결성되었으며, 전국 조직 차원의 청년 운동의 흐름에 따라 성주청년회를 중심으로 성주청년동맹이 결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조직·단체들이 기존의 지역 유지 중심에서 벗어나 청년 중심으로 전환했으며, 민주적인 운영 체제를 강화하였다. 청년 단체는 청년을 포함한 지역민이 근대 지식을 익히고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벌였고,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적실한 인식과 민족의식의 고취에도 힘썼다. 동시에 지역 현안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전국적인 현안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전국 차원의 활동에 보조도 맞추었다. 청년들은 민족 협동 노선의 일환으로 신간회 지회에도 참여하여 활동을 주도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년 운동은 경상북도 성주 지역 청년을 포함한 지역민의 봉건 의식 타파와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으며, 지역의 사회 운동과 민족 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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