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718
한자 張𨥭
영어공식명칭 Jang Yeong
이칭/별칭 명세(鳴世),소매당(訴梅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22년연표보기 - 장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2년 - 장영 사마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71년 - 장영 전설사 별검 제수
몰년 시기/일시 1705년 10월 9일연표보기 - 장영 사망
출생지 장영 출생지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거주|이주지 소매당 - 경상북도 성주군
외가|처가 장영 외가 - 경상북도 성주군
외가|처가 장영 처가 - 경상북도 성주군
묘소|단소 장영 묘소 - 경상북도 칠곡군 지산면 각산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인동(仁同)
대표 관직 세자익위사 위솔|호조 참의

[정의]

조선 후기 성주에 우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인동. 자는 명세(鳴世), 호는 소매당(訴梅堂). 고려조에 시호가 충정인 장안세(張安世)의 12세 후손이며 조선조 이조판서를 지낸 장열(張烈)이 증조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여헌 장현광(張顯光)[1554~1637]이고 아버지는 장응일(張應一)이다. 장현광이 사촌 동생 장현도의 아들 장응일을 후사로 삼았는데, 장응일은 호가 청천당(聽天堂)으로서 부제학을 지냈고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야로 송씨(冶爐宋氏)송희규의 증손녀이자 송광정의 딸이다. 부인은 성산 이씨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의 손녀이자 이도장(李道長)의 딸이다.

[활동 사항]

장영(張𨥭)[1622~1705]은 1622년 경상북도 선산군 인동[현 구미시 인동동]에서 태어났다. 1662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1년에 전설사 별감(典設司別監)이 되었다. 현종, 숙종 대 외직으로 나가서는 자여찰방, 경안찰방, 이인찰방을 역임하였고,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군자감 판관, 공조정랑, 광흥창 주부, 세자익위사 위수(世子翊衛司衛率)를 역임하였다. 특히 이인찰방으로 있을 때 역전(驛田)이 황폐해져 있음을 보고 조정에 세금을 면해 달라고 진정하였다. 인정(仁政)을 펴고 청렴하였다는 평이 있다. 때때로 부모님을 봉양하고자 임금의 교지를 사양하여 부임하지 않았다. 장영은 “주상을 섬기는 날이 길어지면 어버이 섬기는 날이 짧아진다.”라고 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

아버지 장응일의 청천와(聽天窩) 앞에 따로 집을 하나 지어 소매당(訴梅堂)이라 이름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매우 슬퍼하였고 삼년상을 극진히 치렀다. 병자호란 때 의병에 나선 백포(栢浦) 채무(蔡楙)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소암사(嘯巖祠)를 창건하고 배향하였다. 1674년(현종 15)에 허목(許穆)이 한강 정구(鄭逑)와 여헌 장현광을 문묘에 종사(從祀)하는 일을 결정할 때 공정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해 허목이 감탄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한조은장행(韓釣隱壯行)」 1편, 「대책문(對策文)」, 「과거에 합격함[占解]」 몇 편의 글, 약간 수의 시가 있고, 후손들이 다른 사람의 문집이나 기타 여러 글들을 참고하여 장영의 업적을 기록한 「6대조고위수부군유사[六代祖考衛率府君遺事]」가 있다. 1935년 후손들에 의해 『소매당유집(訴梅堂遺集)』이 간행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대흥사 언덕에 있다.

[상훈과 추모]

손자가 장수한 덕으로 호조참판에 증직되었고, 증손자가 장수한 덕으로 사복(司僕)에 증직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4.10.14 인명 변경 장벽(張銢) → 장영(張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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