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314
한자 日帝强占期
이칭/별칭 식민지 시기,3.1 운동,파리 장서 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정의]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성주 지역의 역사.

[개설]

일제 강점기는 일반적으로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 광복까지를 말한다. 물론 1905년(고종 42) 통감부 설치 이후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침략도 사실상 식민 지배와 다름없다고 보고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 지배 기간을 40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1905년부터 1910년까지는 대한 제국의 주권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일제 강점기는 국권을 강탈당하는 1910년 8월부터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한국이 독립되는 1945년 8월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제 강점기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 통치 방식에 따라 1910년대 무단 폭압 정치기, 1920년대 이른바 문화 정치기, 1930년 이후 1945년까지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 침략 정책을 수행하는 전시 체제기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응하여 1910년대는 중국 동북 지방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는 독립 전쟁의 초창기였고, 1919년 3.1 운동을 펼치는 전 단계로서 민족적 저항기이기도 하였다. 1920년대는 일제의 문화 정치에 대응하여 민족 협동 전선을 구축하는 민족 해방 운동기였으며, 1930년 이후는 대륙 침략 정책의 일환인 한반도 병참 기지화 정책 및 한민족 말살 정책에 대응하여 조국 광복에 목표를 둔 시기이기도 하였다.

[행정 구역의 변천]

대한 제국기 성주 지역은 1895년(고종 32) 근대적인 지방 행정 구역의 개편에 따라 성주군이 되어 대구부에 속하였다. 일제 강점기 성주군은 1906년 관할 44개 면 중에서 도장면(道長面)·다산면(茶山面)·덕곡면(德谷面)·운라면(雲羅面)·가현면(加縣面)·소야면(蘇野面)·노다면(老多面)·흑수면(黑水面)·인곡면(仁谷面) 등 9개 면이 경상북도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노곡면(蘆谷面)은 현풍군(玄風郡)[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으로, 증산면(甑山面)은 지례군(知禮郡)[현 경상북도 김천시]에 각각 편입되었다.

1914년 부령 제111호로 부, 군, 면이 통폐합됨에 따라 신곡면(薪谷面)이 금릉군으로, 금릉군 증산면 고방리가 성주군 금수면에 귀속되어 12면이 되었다. 그 뒤 1935년 용두면(龍頭面)과 성암면(聖岩面)을 합쳐 용암면(龍岩面), 지사면(志士面)과 청파면(靑坡面)을 합쳐 수륜면(修倫面)으로 개편하여 10개 면, 111개 동이 되었다. 1979년 성주면성주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 선남면 노석1동과 노석2동이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에, 성주군 용암면 유서1동과 유서2동이 성주군 선남면에, 고령군 덕곡면 성1동과 성2동이 성주군 수륜면에 편입되었다.

[독립운동]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각처에서 자결 순국과 일제의 통치를 거부하는 투쟁이 이어졌다. 성주 출신의 장기석(張基奭)은 천장절 축하식에 참석을 거부하였다가 1911년 1월 5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순영(鄭舜永)은 1915년 7월 15일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이승희(李承熙)김창숙(金昌淑)은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성주군에서는 독립 청원 운동, 일명 파리 장서 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27일부터 4월 6일까지 10여 일 동안 성주면선남면, 지사면, 가천면, 대가면, 벽진면, 월항면 등 7개 면에서 8회에 걸쳐 만세 시위 운동이 벌어졌다.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했던 김창숙은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하여 국내로 잠입,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의열단 나석주 사건을 지원하였다. 그 외 정순영(鄭舜永)안해용(安海容) 등의 만주 방면 활동도 주목된다. 한편 국내에서는 청년 운동과 학생 운동, 소년 운동, 사회 운동, 신간회 운동, 노동·농민 운동, 소비조합 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서학이(徐學伊)배성룡(裵成龍), 김찬기(金燦基), 배학보(裵鶴甫) 등의 활동이 주목된다. 강명호(姜明鎬)석호문(石鎬文), 안종달 등은 1930년대 이후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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