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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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平郡 |
영어공식명칭 | Gwangpyeonggun |
이칭/별칭 | 본피현(本彼縣),벽진군(碧珍郡),경산부(京山府),대주도단련사(岱州都團練使),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성주목(星州牧)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명진 |
고려 시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광평군(廣平郡)은 981년(경종 6)에 경산부(京山府)에서 개칭되어 995년(성종 14) 대주(岱州)로 개칭될 때까지 사용된 현 경상북도 성주군 지역의 이름이다.
성주는 원래 고려 태조 때인 940년(태조 23)에 경산부라 하여 관격을 높였다가, 고려 경종(景宗) 때인 981년 관격을 낮추어 광평군이라 하였다. 광평군은 중국에 있었던 지명을 빌려 정한 듯하다. 하지만 이때 왜 고을 관격을 낮추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경위 및 목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광평군과 관련된 대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지리지」 경산부조에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 실린 광평군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태조 때인 940년(태조 23)에 지금 이름[경산부]으로 바꾸었다. 경종 때인 981년(경종 6)에 광평군으로 강등하였다. 성종(成宗) 때인 995년(성종 14)에 대주도단련사(岱州都團鍊使)라 하였다.’ 광평군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중에서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만 『고려사』「지리지」와 같은 간단한 내용만 기록하고 있다.
신라는 현 경상북도 성주군 지역의 이름을 처음에 본피현(本彼縣)이라 했다가, 경덕왕 때 신안현으로 개명했고, 말기에는 벽진군(碧珍郡)이라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940년 경산부, 981년 광평군, 995년(성종 14) 대주도단련사, 1018년(현종 9) 경산부, 1295년(충렬왕 21)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 1308년(충렬왕 34) 성주목(星州牧), 1310년(충선왕 2) 경산부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광평군이 981년에서 995년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만 사용했던 성주의 옛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지만, 그런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어 연구 과제로 남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