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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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禮山里 |
영어공식명칭 | Ye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재범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지명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예산3리의 옛 사례동(沙禮洞)에서 변화한 예동(禮洞)의 ‘예(禮)’ 자와 북산(北山)의 ‘산(山)’ 자를 합쳐 ‘예산(禮山)’으로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산1리의 자연 마을로 세록골[새록골·세례골·관하리(官下里)]과 새마[새마을]가 있고, 예산2리의 자연 마을로 교촌(校村)과 탑거리(塔路), 풍리[신풍리(新豊里·新風里)], 예산3리의 자연 마을로 예동(禮洞), 예산4리의 자연 마을로 물개[물능개·수능포(水能浦)·무리포(蕪理浦)·무류포(舞柳浦)·약부동(若夫洞)]가 있다.
세록골은 옛 경산부(京山府) 시절에 마을 뒤 일대가 읍기(邑基)여서 관가 아래에 생긴 마을이라 관하리라고 불렀다. 또 예동 앞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새로 생긴 고을’이라 부르다가 음(音)이 변화하여 ‘세록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하던 성주사고(星州史庫)가 있어 ‘새록골’ 또는 ‘세례골’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교촌은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이던 향교가 이 마을에 있어 생긴 이름이다. 예동은 경산부 때 읍기여서 사례동으로 불리다가 예동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물개는 어진 선비가 살던 곳이라고 하여 ‘약부동’으로도 불렀으며, 100여 년 전 이곳을 개간하면서 물이 풍족하다 하여 물능개[수능포]로 부르다가 언젠가부터 물개로 바뀌었다고 한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성주읍 지역은 용산면(龍山面), 남산면(南山面), 본아면(本牙面), 북산면(北山面)의 4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새록골, 교촌, 신풍리, 예동은 북산면에 속하였고, 물개는 용산면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새록골, 교촌, 신풍리, 예동, 물개를 합하여 예산동으로 하고 4개 면[용산면, 남산면, 본아면, 북산면]을 통합한 성주면의 10개 법정동 중 하나로 편제하였다. 1979년 성주면이 성주읍으로 승격하면서 성주읍 예산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각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성주읍 예산리가 되었다.
예산1리 세록골과 예산3리 예동의 뒤쪽은 인현산(印懸山)에서 뻗어 내린 지맥이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고, 예산2리 교촌 앞에는 인현산과 수수골[洙泗谷]에서 발원한 예산천(禮山川)이 흘러 이천(伊川)으로 유입된다. 대체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평지에 자리하였으며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예산리는 성주읍 소재지와 북동쪽으로 연접하며 동서남북이 성주읍의 삼산리와 경산리, 백전리, 금산리, 학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75㎢이며, 예산1리와 예산2리, 예산3리, 예산4리 4개 행정리에 1,033가구, 2,106명[남 1,072명, 여 1,03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예산리 북쪽에 성주 일반 산업 단지가 있고 서쪽에서 남북으로 지방도 제905호선이 지나간다. 1959년 성주중학교가 성주농업중학교[6년제]에서 분리되어 예산리로 옮겨 왔으며, 성주중학교 인근에 성주 도서관이 있고, kt 성주지사와 한국농어촌공사 성주지사가 자리한다. 2020년 성주읍성과 쌍도정 등을 복원한 성주 역사 테마 공원이 예산리에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후 혼란기에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등을 불러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던 가수 백년설이 예산리 출신이다.
문화 유적으로 성주향교 대성전 및 명륜당[보물]과 동방사지 칠층석탑(東方寺址七層石塔)[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만산댁(晩山宅), 배리댁(裵里宅)이 있다. 석빙고(石氷庫) 터, 관옥(官獄) 터, 배씨정(裵氏井)과 현충 시설인 충혼탑(忠魂塔)이 있다. 충혼탑 아래에는 조선 영조(英祖) 때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여 세운 ‘성산 기공비(星山紀功碑)’와 목민관 선정비(善政碑) 17기를 비롯하여 고종(高宗) 때 사헌부 감찰에 제수된 만산 도갑모(都甲模)가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의 구휼에 힘쓰자 군민들이 세워 준 ‘도갑모 시혜불망비’가 있었는데 모두 성주 역사 테마 공원으로 옮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