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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태어난 심산 김창숙은 동강 김우옹의 13세손으로 유서 깊은 유학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부친의 선진 사상과 독립운동가인 스승 김승희의 영향을 받으며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에 뛰어든다. 일제 강점기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성명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가르치는 한편, 성주 유림들이 참여한 파리장서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이를 계기로 중국으로 넘어가 임시정부에서도 활동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독립운동에 함께 헌신한 두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기도 한다. 심산 자신도 상해에서 제자의 밀고로 국내 압송되어 모진 고문을 받는데 이때 얻은 병으로 앉은뱅이가 되어 '벽옹'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해방이 되었지만 부조리에 대한 김창숙의 저항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6.25전쟁 중 부산에서 이승만 하야 성명문을 발표하고 부산정치파동때는 강패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유교 진작에도 힘써 성균관대학을 세우고 면학을 독려한다. 평생을 저항정신으로 살아간 김창숙이지만 말년은 여관과 병원을 전전할 정도로 빈한했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는 강직함과 청렴함을 보여준 결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