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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명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650
한자 李聃命
영어공식명칭 I Dammyeong
이칭/별칭 이로(耳老),정재(靜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46년연표보기 - 이담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6년 - 이담명 생원시에 입격
활동 시기/일시 1670년 - 이담명 문과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83년 - 이담명 이조참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94년 - 이담명 창성으로 유배
활동 시기/일시 1699년 - 이담명 창성 유배 생활 방면
몰년 시기/일시 1701년연표보기 - 이담명 사망
출생지 이담명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학지 이담명 수학지 - 경기도 연천군
부임|활동지 이담명 부임지 - 충청남도 홍성군
유배|이배지 이담명 유배지 - 평안북도 창성군
유배|이배지 이담명 이배지 - 충청남도 보령시
묘소|단소 이담명 묘소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광주(廣州)
대표 관직 이조참판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이로(耳老), 호는 정재(靜齋). 증조할아버지는 공조참의 이윤우(李潤雨)이고, 할아버지는 수찬 이도장(李道長)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이고, 어머니는 벽진 이씨(碧珍李氏)로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언영(李彦英)의 딸이다. 동생은 생원 이한명(李漢命), 이우명(李佑命)이다. 이전까지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재선생문집(靜齋先生文集)』에 따르면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활동 사항]

이담명(李聃命)[1646~1701]은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의 문인이다. 1666년(현종 7) 생원시에 입격하고, 1670년(현종 11) 별시(別試) 을과로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봉상시 봉사(奉常寺奉事)·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홍주목사(洪州牧使)를 역임하였다.

남인(南人)과 서인(西人)이 치열하게 격돌한 숙종 대에 살았기에 생애 내내 정국 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숙종 대에는 남인과 서인 사이에 정치적 격변이 이어졌다. 1680년(숙종 6) 경신환국(庚申換局)[서인 일파가 반대파인 남인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사건],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소의 장씨 소생의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로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일],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당시의 집권층인 남인이 폐비 민씨의 복위 운동을 꾀하던 일파를 제거하려다 도리어 화를 입은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들로 이담명은 큰 부침을 겪었다.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파직되어 아버지 이원정의 유배지인 평안도 초산[현 평안북도 초산군]에 따라갔다. 경신환국으로 이원정이 죽었다. 1683년(숙종 9) 다시 복관되어 우승지(右承旨)·전라도관찰사·부제학(副提學)·이조참판(吏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진정(賑政)에 힘쓰고 선정을 베풀었다. 외직에 있을 때 보고 들은 사실과 군정(軍政)·호포(戶布)·시재(試才) 등의 시폐(時弊)를 들어 시정책을 강구한 상소를 올렸다.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아버지의 신원(伸冤)을 이루었지만 갑술환국으로 인해 유배되었다. 1694년 4월 평안도 창성[현 평안북도 창성군]으로 유배된 후, 1697년(숙종 23) 윤삼월 남포(藍浦)[현 충청남도 보령시]로 이배되었고 1699년(숙종 25) 방환(放還)되었다.

[학문과 저술]

기본적으로 관료 학자로서 경세론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서전차의(書傳箚疑)」·「기뇌홍(記雷虹)」 등 많은 글을 남겼다. 저서로는 8권 4책의 『정재선생문집』이 있다. 구휼(救恤) 때의 기록인 『진정총람(賑政總覽)』을 남겼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이 이담명의 묘갈명을 지었다. 1690년(숙종 16) 영남에서 대흉년이 발생하였을 때 백성들 구제에 공을 세운 일로 도민들이 영사비(永思碑)[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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